메뉴보기

독서후담

HOME > 교육 프로그램 > 독서후담
2022-1학기 <독서후담> 당선작 - <얼마나 닮았는가> 서평
  • 글쓴이 관리자
  • 작성일 2022-08-11 15:58:25
  • 조회수 450

허구의 힘


채수윤(대학원 화학공학과)


김보영 작가의 <얼마나 닮았는가>10편의 중단편을 모은 소설집입니다. 각 소설들은 미래 기술로 인해 바뀐 사회나 초능력이 있는 인간이 존재하는 시대를 상상하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엄마는 초능력이 있어>는 분자의 움직임을 볼 줄 아는 초능력을 가진 새엄마가 자신의 딸과의 유대감과 애착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01 사이>는 시간 여행이 가능한 시대에 사람들이 각자 자시 시대의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고, 그 신념이 모여서 다시 시대 정신이 되는, 결국 인간의 신념이 그 시대정신을 만든다는 이야기입니다. <빨간 두건 아가씨>는 신체를 바꿀 수 있는 사회에서 여성이 거의 남성으로 성을 바꾸어 여성이 거의 남지 않게 된 상황에서 살아가는 여성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고요한 시대>는 기술의 발달로 언어를 대체하게 된 마인드 넷의 등장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가상환경으로 느낄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고, 언어학자인 주인공이 언어의 쇠퇴를 바라보는 이야기입니다. <니엔이 오는 날>은 미래의 유토피아(도원경)를 만들기 위해 과거의 사람들이 미래로 이동하는 와중에, 도원경을 만드는 데 일조한 순은 도원경으로 향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람>은 초인이 존재하는 시대에서 번개는 사회에 문제가 생길 때 마다 문제를 해결하지만, 결국 인간의 탐욕이 없어지지 않는 한 문제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허망함과 무력감에 휩싸이는 이야기입니다. <로그스 갤러리, 종로><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람> 이후의 이야기로, 좋은 일을 하기를 포기하고 사회에 불안감을 조성하는 번개를, 또 다른 초인인 서리가 막아내는 이야기입니다. <걷다, 서다, 돌아서다>는 시간이 펼쳐진 시대에서 앎으로 나이가 정해지는 상황의 이야기입니다. <얼마나 닮았는가>는 유로파 전용 배가 타이탄에서 구조 신호를 받아 보급품을 전해주려고 하는데, 그 안에서 벌어지는 성차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같은 무게>는 많은 세계가 존재하는 시대에서 아스퍼거인 주인공이 정상과 비정상에 대해 생각하는 이야기입니다.

요새 SF 소설의 인기가 많아졌다는 소식을 기사로 접했지만, 사실 SF 소설을 본격적으로 읽어본 기억은 없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기회로 김보영 작가님의 소설집을 읽어보게 되었는데, 모든 소설들이 흥미진진하고 기발하였습니다. 먼저 왜 요새 SF 소설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SFScience fiction의 줄임말로, 말 그대로 과학 소설입니다. 여기서 Fiction의 뜻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Fiction은 소설이라는 뜻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꾸며낸 이야기, 허구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SF는 과학적으로 쓰인 허구라는 뜻입니다. Sciencefiction은 어울리는 단어가 아닌 것처럼 보이고 어떻게 보면 반의어로 보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과학(Science)는 귀납법이나 연역법에 기반한 논리를 통해 확증된 사실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허구와는 뭔가 잘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과학에는 허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과학 소설의 배경이 되는 미래 세계는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상상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인공지능의 급부상으로 인해 시대가 너무나 빠르게 변하기 때문이죠. 인공지능이 마냥 미래일로만 생각했던 저의 생각을 바꿔놓은 사건은 이세돌과 알파고의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였습니다. 바둑을 잘 모르던 저도 인간계 최강인 이세돌을 인공지능이 이기는 것을 보면서 상당한 당혹감을 느꼈습니다. 우리가 어릴 때 막연히 상상하던, 우리와 소통하며 인간의 일을 대신할 수 있는 인공지능의 도래가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빠르게 발전하는 과학 기술에 대응 하는 방식 중 하나로 SF 소설을 읽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김보영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점이 있습니다. 작가는 소설마다 엄청난 세계관을 만들어낸다거나 누구도 상상도 못할 미래 기술을 상상하는 데에 집중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상상할 만한 미래 기술이나 초능력을 도입하고, 그 시대에서 있을 법한 사람과 사건에 집중하는 느낌이 더욱 강했습니다. 미래 시대에도 인간은 변하지 않고, 인간이 변하지 않으니 사회도 시대도 변하지 않으니 오히려 소설을 읽으면서 크게 낯설지 않았습니다. <01사이>에서 과거에서 미래로 온 인물들은 과거에 가졌던 신념을 그대로 미래로 들고 오고, 그 사람들이 모여 과거와 비슷한 사회를 구축하죠. <얼마나 닮았는가><빨간 두건 아가씨>에서는 성차별이 존재했고,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람>에서는 인간들의 탐욕과 이기심이 존재했고, <같은 무게>에서는 인간들의 자신과 다른 사람을 차별하는 모습도 보여주었고, 그럼에도 <로그스 갤러리, 종로><니엔이 오는 날>에서처럼 인물들은 더 좋은 세상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모습들은 현재 인간 군상과 크게 다르지 않죠. 소설 속 시대와 현대를 비교하면 인간은 바뀌지 않지만 인간이 다루는 기술은 변하다 보니 때로는 소설 속에서 인간도 제어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발생합니다.

사실 지금도 SF 소설안의 사회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효율적인 삶을 위해 화석연료를 쓰며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했던 인류는 결국 지구 온난화라는 심각한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기후 문제로 인해 다양한 전염병까지 돌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는 요즘입니다. 사람들은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지구 온난화를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과학 기술의 발전은 항상 명암이 있었습니다.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지구 온난화를 막을 수 있겠지만, 그 기술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왜 과학 기술을 계속 발전시켜야 할까요?

7년 전에, 제 친동생과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친동생은 과학을 전공하는 저에게 왜 인공지능은 개발되어야 하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인류에 아주 큰 혜택을 주었고 우리는 그 혜택을 느끼지 못할 뿐이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서 인공지능도 개발되면 인류에게 아주 큰 편리함과 효율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얘기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대답을 하면서도 제가 한 답에 확신이 없었습니다. 인공지능은 우리에게 편리함과 효율을 가져다 줄 것이지만, 반대로 인공지능은 우리의 일자리를 뺏어가고 인류의 존엄성을 위협할 수도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동생이 저에게 7년 전 했던 그 질문은 아직도, 그리고 미래에도 계속 유효할 것입니다. 인공지능은 왜 개발되어야 할까? 과학기술은 왜 개발되어야 할까? 저는 과학기술은 개발될 수 밖에 없다고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국가 경쟁력에서 과학이 중요한 시대에서 과학기술을 포기하는 것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국가 자본은 연구소에 쏠리고 과학 기술은 개발 될 수 밖에 없는 환경이 만들어 질 것입니다. 아까의 질문은 다른 쪽을 향하게 됩니다. 결국 과학기술이 개발 되는 것은 공리 같은 당연한 것이고 이를 어떻게 제어하고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인류 사회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우리는 과학 기술의 발전을 긍정적으로만 볼 것입니다. 왜냐하면 시스템이 과학 기술을 제대로 제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회의 시스템이 오작동하는 경우를 수 없이 보아왔습니다. 학교든, 지역 사회든, 국가든 어떠한 집단도 완벽한 시스템을 갖춘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과학 기술의 발전에 불안감을 갖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릅니다.

위 문제의 답은 SF 소설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겪지 않은 일, 미래는 그래도 옵니다. 현재와는 어떤 형태로든 다르게, 미래는 언젠가 우리 곁으로 올 것입니다. 그 미래를 적극적으로 상상하여 구현한 김보영 작가의 SF 소설을 읽다 보면, 실제로 이런 사회가 온다면 사람들이 소설에 나온 것처럼 행동할 것 같습니다. 소설들의 인물들은 지금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마치 우리가 그 시대로 간다면 그렇게 행동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01사이><로그스 갤러리, 종로>에서 작가가 강조했던 것처럼, 결국 그 시대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만들어 갑니다. 우리 모두 현재 벌어지고 있는 문제들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우리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상상해야 합니다. 결국 상상하여 행동하는 것은 인류고, 그 행동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것도 인류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과학을 발전시키는 것은 과학자들의 몫이겠지만, 허구를 적극적으로 생산하는 것은 온 인류의 미션입니다. 이런 허구와 상상을 바탕으로 더 나은 시스템을 만들고, 미래에 더 잘 대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빨간 두건 아가씨>에서 신체를 바꿀 수 있는 사회가 도래했고 대부분의 여성은 남성으로 성별이 바뀌어집니다. 진짜로 이런 시대가 온다고 가정을 하고 우리는 각자 신체를 바꿀지 상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상상들이 모인다면, 실제로 그런 시대가 오더라도 어쩌면 인류의 파멸을 막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과학을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과학도 열심히 해야하지만 인문학도 열심히 해야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과학자를 꿈꾸기 때문에 제가 개발할 기술이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줄지 많이 생각해보라고도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과학을 전공해서, 과학을 잘 알아서가 아니라 저는 지구 위에 살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미래를 상상 해야할 의무와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책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런 허구의 힘은, <세상에서 가장 빠른 사람>에서 사람들을 구출해내는 번개처럼, <로그스 갤러리, 종로>에서 번개에 맞서 정의를 지키려는 서리처럼, <얼마나 닮았는가>에서 타이탄에 보급품을 가져다주기 위해 노력하는 이진서 선장처럼, 사람을 지키고 지구를 지킬 수도 있습니다. 허구의 힘은 간과되어선 안됩니다. SF 소설이 우리에게 이런 허구의 힘을 길러주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는 SF 소설의 도움을 받으며, 우리의 상상과 허구를 믿고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끝)


목록





이전글 2022-1학기 <독서후담> 당선작 발표
다음글 2022-1학기 <독서후담> 당선작 - <사이보그가 되다> 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