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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학기 "독서후담" 당선작 - <재난에 맞서는 과학> 서평
  • 글쓴이 관리자
  • 작성일 2024-08-12 15:11:49
  • 조회수 199

현실을 응시하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삶의 의미


이세광


  누군가는 양심을 저버리고 올바르지 못한 행동을 한다. 누군가는 정의를 말하고 진실을 추구하려 하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혐오한다. 누군가는 희망을 생각하지 않고 그저 체념하면서 포기해버린다. 악의 기준이 점차 모호해지며, 마치 보편화되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세상의 수많은 일들을 바라볼 때면, 종종 슬픔과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그러나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이러한 상황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그리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스스로가 두렵고 부끄럽다. 두려움에 지배당하지 않고 싶다.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올바른 선택을 하는 용기를 내고 싶다. 스스로에게, 가족에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그리고 세상 어딘가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고 떳떳하고 싶다.

  과학을 배우고 과학과 밀접한 관계를 맺을 사람으로서, 과학자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과학자는 과학이 사회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올바르게 이해하고,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과학 지식을 배우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로서의 역할을 명확히 인식하고 올바르게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내가 배우고 실천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어떻게 두려움을 극복하고 용기를 얻을 수 있을지, 특정 상황에서 타협을 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무엇이 올바른 삶이며 어떤 삶을 추구해야 하는지 아직은 확신이 잘 서지 않는다. 그래서 그 방법을 알고 그렇게 살기 위해 이 책을 읽었다.


  『재난에 맞서는 과학』은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다룬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불확실성’이라는 키워드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현대 사회에서의 과학은 절대적인 원리가 아닌 구체적인 상황에서 시작하며, 모두가 동의하는 확실한 답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불확실성을 내포한다. 과학적 불확실성의 경계는 사회적으로 결정되며, 이는 과학이 얼마든지 다르게 활용될 수 있고 심지어 조작의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초기 단계에서 기업과 정부는 과학적 불확실성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다. 기업은 가습기살균제 연구 단계에서 발생했던 제품 안전성의 모호함에 대한 신호를 무시했다. 정부는 법적 근거, 담당 부처 업무, 조사 타당성 및 예산 등의 온갖 이유를 대며 조사를 지연시켰고, 손에 잡히지 않는 확실함을 좇는 과정에 더 많은 사회적 자원을 썼다. 그들은 과학이 언제나 확실하다고 생각했고, 과학적 불확실성을 알지 못했거나 알고 있었음에도 그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은 더욱 심화되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를 다루는 과정에서 누군가는 과학적 불확실성을 인지했고, 피해에 관한 논의가 지나치게 과학적 인과관계 쪽으로 쏠리는 상황을 경계하려 했다. 그들은 정교한 연구를 설계하고 확실한 증거를 도출하는 데 집중하기보다, 피해자들이 호소하는 증상에 귀를 기울이며 새로운 연구 방법을 제안하려 했다. 과학적 불확실성에 대한 이해와 합의가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재난에 맞서는 과학』은 과학이 정치, 법 등의 사회적 맥락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과학적 불확실성에 대한 과학자의 책임을 강조하며,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대처하는 전문가 및 시민단체의 연대와 노력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떳떳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 그리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의 노력이, 언젠가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이 세상에 온전한 것은 없다. 과거에 무엇인가 돌이킬 수 없이 부서졌고, 현재는 상처 없이 주어진 말끔한 시간이 아니라 부서진 과거의 잔해다. 그 현재에 우리가 살고 있다. 폐허를 돌이킬 수는 없지만, 폐허를 응시할 수는 있다. 폐허 속에서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은 채 폐허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면, 우리는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 그리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사회 속에서 살아갈수록, 사회 시스템의 영향을 받기 더 쉬워지고 기존의 관념을 거스를 수 있는 행동을 하기 더 어려워진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온갖 핑계를 대며 사안을 미루고 책임을 회피하는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끊임없이 고통과 마주하고 싸우며 올바름을 추구하려 하는 삶을 살 것인가.

  여전히 가야할 길은 멀지만,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목소리와 행동이 세상의 변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외로운 길이지만, 함께 하는 사람들이 세상의 보이지 않는 곳에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나도 그 길을 걸어가야 한다.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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