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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학기 "독서후담" 당선작 - <파견자들> 서평
  • 글쓴이 관리자
  • 작성일 2024-08-12 13:58:48
  • 조회수 164

파견자들, 공존의 방향성에 대하여.


김나현


처음 이 책을 받았을 때, ‘파견자들이라는 제목과 무언가 기괴하면서 섬뜩한 표지가 눈에 먼저 들어왔다. 어두운 분위기의 아포칼립스에 대한 이야기일까. 첫 몇 장을 읽으면서 시술에 대한 이야기를 보며, 우리가 반려동물에게 이식하는 칩 같은 건가 하는 생각도 했다. 보기 좋게 틀렸지만,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미래의 어느 시점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범람체라는 것에 의해 지하로 내쫓겨진 인류들. 그곳에서 지상을 되찾기 위해 지상을 조사하는 파견자와 이를 꿈꾸는 주인공 태린이 가진 조금 이상한 뉴로브릭. 처음 태린이 가진 뉴로브릭이 단순한 뉴로브릭이 아닌 범람체와 연결되어 있는 무언가라고 의심했던 부분은 다름 아닌 태린의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범람체에 대해 하지만 왜 증오를 품어야 해?- 라고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태린이 선망하는 대상 이제프 파로딘은 이렇게 말한다.

 

파견자는 매료와 증오를 동시에 품고 나아가는 직업입니다. 무언가를 끔찍하게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불태워버리고 싶을 만큼 증오해야 합니다.”

 

파견자는 범람체를 애증의 감정으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혼란스러운 상태 속에서, 태린은 왜 범람체에 대해 증오해야만 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 나열한다. 그 모습이 마치 스스로를 납득시키려는 것처럼 보였다. 파견자는 그래야만 하니까. ‘에 의해 통제되지 않은 몸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상처 입혔음에도, 늪을 통해 쏠이 단순한 뉴로브릭이 아닌 범람체라는 걸 안 뒤에도 태린은 쏠을 없애려고 하기보다는 같이 존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했다. 태린은 쏠을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해하고자 했다. 근본적으로 가진 태린의 애정이 범람체와 인간의 자아가 서로 공존할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닐까. 그도 그럴 것이, 태린은 증오해야만 하는 이유들을 찾아야만 했었으니까. 범람체에 대한 근원적 혐오를 가진 네샤트와는 다른 결인 것이다.

늪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존재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 그러면서 살아가는 것. 책을 읽으며, 그리고 마지막까지 이제프와 태린의 대척하는 부분에서도, 나는 과연 태린과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인간은 미지의 것을 두려워한다. 나이가 들수록, 경험이 쌓일수록, ‘자아가 더 강해질수록, 우리는 잘 모르는 새로운 것을 만나는 것보다는 기존의 것을 선호하고 머무르며 변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는 인간의 생존 본능으로도 비춰진다. 그렇기에, 그런 인간의 약한 점을 이해하기에, 이제프의 마음도, 태린의 마음도 너무나 잘 와닿았다. 오히려 이제프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내 생각을 환기시켜준 부분은 책 뒤쪽의 한 구절이었다.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인정의 문제였다. 변이는 죽음이 아니라는 것, 그들은 망가져 가는 것이 아니라 단지 다른 형태의 삶으로 진입했다는 것. 그들은 이전의 것을 차차 내려놓고 낯선 방식을 다시 배워나갔다.”

 

우리는 우리가 처한 상황을 바꿔나갈 힘은 없다.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세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닌, 그 세계를 애정하는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우리는 그만큼 더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옛 명언에 이런 말이 있다. “We cannot direct the wind. But we can adjust the sails.” 이미 벌어진 상황 속,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바람에 맞서기보다는, 돛을 조절하여 우리가 가는 방향을 스스로 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절대 혐오에서 시작될 수 없다. 애정을 기본으로 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뤄진다. 미지의 것을 피하기만 하고, 부정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부딪히고 이해하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그렇게 성장하고 발전한다. 나는 그래서 세상이 사랑으로 가득 찼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을 했다.

 

이 책을 읽으며 또 하나 들었던 생각은, 뇌에 함께 있는 쏠과 태린, 그리고 범람체들의 개체이지만 전체라는 부분들이 애초에 인간의 몸과 상당히 비슷하다는 점이다. 결국 우리도 우리의 몸이 각 개체(세포)들로 이루어져 있고, 심지어는 세균들과도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그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지도 않으며, 그들은 그들 자신만의 역할을 하고 일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모여 를 이루고 있다. 인간의 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할 때, 단 하나의 생각만을 하는 게 아니라, 여러 생각들이 우후죽순 떠오르기도 한다. 그것들은 서로 상충되기도 하고, 특정한 결론에 대한 방향성을 가지기도 한다. 예전에 읽었던, 내가 좋아하는 책인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라는 에세이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떠오르는 모든 생각을 무작정 믿지 않아야 합니다.’ 여러 생각 중 특정 경험에 기인해 왜곡되어 나오는 생각들도 있을 것이며, 내 욕심과 결합되어 나오는 생각들도 있을 수 있다. 이런 생각들 중 어떤 것을 믿느냐에 따라서 내 생각의 방향성도 달라지게 된다. 결국 또한 범람체와 그리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도 공존함으로서 존재하고 있었다. 나를 이루는 것들을 혐오했다면, 오히려 나는 분해되고 말았을 것이다.

 

책이 참 다채롭다. 범람체의 아찔하게 화려한 색상들이, 읽는 내내 눈앞에 떠다니는 것 같았다. 책에 분명 그림 한 장 없었음에도, 가끔은 너무 많은 색채를 본 것만 같아 버겁기도 했다. 던지는 주제들도 떠오르는 생각들도 너무 다채로웠다. 입체적인 인물들과, 범람체들. 이들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많은 이들이 이 다채로움을 보고 빠져들기를, 그리고 사랑에 빠지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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