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후 삶의 모습을 재현하다 - 김숨, <잃어버린 사람>
박문정
“잃어버린 사람”은 중의적으로 읽히는 제목이다. 목적어가 생략된 것으로 생각하면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되고, 주어가 생략된 것으로 생각하면 누군가가 사람을 잃어버린 것을 가리키는 말이 된다. 이 소설에는 해방 후의 부산에 살고 있는, 떠나가는, 이제 막 도착한, 여러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 사람들은 모두 무언가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자신의 가족을, 청춘을, 세월을, 사람들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린 사람들. 해방 후의 어떤 하루 동안 부산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조명하며 작가는 우리가 잃어버린 해방 후 사람들의 삶을 생생하게 부활시킨다.
이 책은 사례집 같기도 하고, 다큐멘터리 같기도 한 플롯을 따른다. 한 명의 주인공을 특정하기도 애매하고, 기승전결을 구분하기도 애매하다. 부산의 여러 지역을 옮겨가며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처한 상황과 그들의 대화를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형식을 따르기 때문에 여러 장에 걸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이동 중인 인물이다. 예를 들어 직장을 소개해준다는 친구를 만나러 부산으로 온 애신은, 친구가 있는 “미도리마치”의 위치를 사람들에게 물어보며 계속 등장한다. 하지만 소설은 그녀의 이동을 따라가며 규칙적으로 서술되지 않고, 어떤 장소를 중심으로 서술하다가 그녀가 그곳을 지나가면 불규칙적으로 그녀에 대한 서술도 진행되는 식이다. 또한, 애신이 등장했을 때 독자에게 노출되는 것은 주로 당사자가 아닌 그녀가 만난 이름 모를 사람들의 서사이다. 그녀가 질문을 건네는 혹은 그녀에게 말을 거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고, 애신의 서사는 대화 상대가 그녀에게 질문을 던질 때만 조금씩 풀어질 뿐이다.
이런 서술 방식은 독자가 특정 인물의 서사에 집중하며 따라가기 어렵게 한다. 또한 책에 등장하는 많은 이야기 중 특정 사연이 어느 누구의 고통인지 한 명 한 명 구별하여 기억하기도 쉽지 않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식민지 시절과 해방 후에 겪었던 고통, 이주, 굶주림, 힘든 구직 혹은 직장 생활에 관한, 크게 다를 것이 없는 주제의 사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서술은 오히려 그 시절 사람들의 삶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한다. 마르케스의 소설 [백년동안의 고독]은 등장 인물들의 이름과 삶의 양태를 의도적으로 유사하게 만들어 독자로 하여금 특정 인물과 삶의 모습을 구분하기 어렵도록 한다. 하지만 이런 작법이 오히려 한 가문에서 운명이 반복되는 것을 독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유사하게, 이 책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유사한 서사가 등장함으로써 독자는 그 삶의 모습을 한 개인의 것으로 구분하여 생각하기보다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게 된다.
하지만 거꾸로, 이 작품은 그 시기 사람들의 삶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기 위한 방법으로 개개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택함으로, 개개인의 삶을 추적하는 것도 포기하지 않는다. 사람들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는 관통하는 공통점이 있기도 하지만, 각기 다른 애환을 가지고 있다. 항상 8마리의 금붕어가 노니는 사해루의 어항 속을, 구봉은 완벽한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매일매일 죽은 금붕어가 교체되어 살아있는 금붕어의 숫자가 유지될 뿐이다. 어떤 세상이나 시대를 이해하고자 할 때 그 속의 한사람 한사람을 들여다보지 않고 멀리서 조망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매일 금붕어가 죽어가는 세상조차 완벽한 것으로 착각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이 묘사하고 있는 시기는 해방과 6.25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이 시기를 멀리서 바라본다면, 어둡던 일제 강점기를 지나 해방이 되고 전쟁이 일어나기 전의 평화로운 시기라고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해방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이 사람들 한 명 한 명의 삶을 바로 구원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한끼 먹고 사는 걱정을 하고 직장을 찾아 전국을 유랑한다. 그리고 그 와중에 베풀기도 하고 훔치기도 하고 배신도 하고 보답도 한다. 이 소설을 통해 독자는 해방 후 삶의 모습을 제대로 이해하고 들여다보는 방법을 배우고, 그를 기반으로 본인이 살고 있는 시대와 자신의 삶을 들여다 보는 방법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