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끄러지는 말들> 서평 : 국어에 대한 생각과 과학의 언어
채수윤
<미끄러지는 말들>은 언어학자이자 교육자인 백승주가 기고한 칼럼들을 4가지 분류로 엮어서 출간한 책이다. 1장은 표준어와 일상어에 대한 고찰이 담겨있고, 2장에서는 혐오/차별/폭력이 어떤 식으로 언어로 구현되며 우리는 무엇을 간과하는지 이야기한다. 3장에서는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육자로서 한국에서의 교육 시스템에 대한 생각과 4장에서는 저자가 과거와 현재의 세태들을 보며 느낀 점들을 정리하였다.
우리는 학창시절 내내 ‘국어’를 배웠다. 아주 어릴 때는 철수와 영희가 표준어로 다소 따분한 내용으로 대화하는 것을 보았고, 점점 커가며 어려운 문법이나 시/소설 같은 장르 문학도 접하게 되었다. 오랫동안 국어를 배우고 접한 한국인으로서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것이 있다. 국어는 단일하기 때문에 맞고 틀림이 존재한다는 믿음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특별히 이런 사상을 주입했던 것은 아니지만, 나는 국어에 정답이 있다는 믿음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이는 [시험에 대한 열정]이나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에서 저자가 주장하듯, 우리가 시험이라는 옳고 그름을 가리는 한국식 교육 평가 방식을 오랫동안 치러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전에 ‘빵꾸’ 내기], [도대체 순수는 어디에]와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에서 말하듯, 우리는 일본어에서 유래된 외래어나 신조어가 잘못된 우리말이라고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왔다. 또한 [혀의 연대기]에서 이야기하듯, 우리나라의 여러 방언 중 하나인 제주 방언조차 표준어가 아니라는 이유로 서울에서 사용하기 어렵다. 즉, 제주 방언은 국어에서 배제된 것이다.
이제 국어를 다시 정의해야 할 것 같다. 국어는 우리나라에서 쓰이는 여러 언어들을 합쳐 놓은 교집합이 아니다. 다만 국어란 우리 국민 대다수가 사용하는 언어를 이야기한다. 다시 말해 내가 생각했던 국어는 모두의 언어가 아닌 다수의 언어였던 것이다. 이는 [금지된 언어 3 : 구어의 발견]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국어의 언어 규범이 방언과 소수 언어를 탄압하는 방향으로 국어의 체제를 유지하려고 하였고, 나 역시도 그러한 영향을 받은 것이다. 따라서 방언이나 외래어 같은 소수 언어들을 인지하고 국어의 범주에 넣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규범적인 언어가 규정되는 것은 반드시 나쁘다고만 볼 수 없다. 오히려 통일된 언어 체계가 존재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하다. 특히 과학에서의 언어는 매우 엄격하다. 과학은 자연 현상을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엄밀한 언어 정의가 필요하다. 과학자는 엄격히 정의된 언어를 사용하여 자신의 연구 내용을 발표하거나 글로 쓴다. 과학에서 언어의 역할은 사실이나 생각을 상대방에게 오차 없이 전달하는 것이다. 과학의 언어들이 정밀하게 정의되지 못한다면, 주변 사람이나 후대에게 우리가 발견한 과학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엄밀한 언어체계가 필요하지만, 이것이 버내큘러 같은 다른 언어에 비해 항상 우위를 가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때에 따라서 규범적인 언어보다 통속적인 언어가 더욱 필요할 때가 있다. 엄밀한 언어체계 속에서만 과학이 정의되고 전달된다면, 과학은 확장성을 잃게 된다. 예전에 많은 사람들이 과학에 흥미를 느끼어도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이유는 엄밀한 언어체계를 사용하여 과학을 설명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정밀하게 재단된 용어를 통해 과학을 설명하고자 한다면 대중은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생각들은 사회 전반적으로 많이 공감 받아왔고, 최근에는 많은 과학자들은 유튜브나 책 같은 매체를 통해 구어를 사용하여 과학을 설명하고 소통하고자 해왔다. 누군가는 과학적 사실을 살짝 왜곡하여 비유적으로 설명하고자 할 것이고 누군가는 SF소설을 통해 과학적 사실과 이야기를 재미있게 엮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학교에서도 3분과학토크대회나 포스텍 SF 어워드를 통해 과학을 대중적으로 확장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모두 과학의 언어이다.
과학의 언어는 항상 규범적일 수 없다. 머릿속 과학적 사실들은 정밀한 언어들로 구축되어 있겠지만 (사실 정밀한 언어도 사람마다 다를 것임), 과학의 일상성과 확장성이 더욱 중요한 순간들도 존재할 것이다. 과학에는 정답이 있겠지만, 과학의 언어는 정답이 없고 무궁무진하다. 규범적인 언어를 쓸 것인지 통속적인 구어를 쓸 것인지를 잘 결정하고 구분한다면, 우리는 언어를 잘 활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언어를 오해하지 않고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