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작한 말들>을 읽고
생명과학과 이성민
오찬호의 <납작한 말들>은 사회적 약자와 관련된 문제를 둘러싼 우리의 언어를 정면에서 다루는 책이다. 장애인의 이동권, 노인 공경, 난민 수용처럼 항상 논쟁의 중심에 서 있는 주제들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쉽게 말해 버리는지, 그리고 그 말들이 어떻게 문제를 납작하게 만드는지를 저자는 반복해서 지적한다. 그 문제의식 자체는 분명 설득력이 있다. 많은 사회적 갈등이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문제를 다루는 우리의 언어가 지나치게 단순하고 무책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읽는 내내 불편하다. 이유는 다루는 주제의 무거움 때문만은 아니다. 저자의 어조 때문이다. 저자는 대중이 사용하는 언어를 하나의 유형으로 묶고, 그것을 ‘납작한 말’이라고 단정한다. “사람들은 보통 이렇게 말한다”는 식의 서술은 강력하지만 동시에 거칠다. 복잡한 사회 문제 앞에서 사람들의 말이 왜 그렇게 형성되는지에 대한 분석보다는, 그것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를 지적하는 데에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그 결과 독자는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위치가 아니라, 비판의 대상이 된 듯한 인상을 받는다.
물론 대중의 납작한 말들이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다”,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는 말은 갈등을 설명하는 언어가 아니라, 갈등을 덮어두는 언어에 가깝다. 그러나 왜 사람들은 이런 말을 반복하게 되는가. 개인의 무지나 무감각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구조적 문제에 개입할 수 없다는 무력감, 사회 문제에 지속적으로 반응해야 하는 피로감, 그리고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사회 분위기 역시 함께 고려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러한 맥락이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책의 비판은 다소 일방적으로 느껴진다.
그럼에도 이 책이 남기는 가장 큰 효과는 독자 자신의 태도를 돌아보게 만든다는 점이다. 저자의 어조에 반발하면서 읽다가도, 결국 질문은 나 자신에게로 향한다. 나 역시 “사람들은 다 그렇다”는 말로 사고를 멈춘 적은 없었는가. 복잡한 문제를 단순한 말로 정리함으로써,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위치에 서 있지는 않았는가. 그렇게 생각해 보면, 저자가 비판하는 ‘납작한 말들’은 결코 타인의 언어만은 아니다.
사회 문제는 본질적으로 복잡하다. 수많은 이해관계와 감정, 제도와 역사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종종 “그러면 안 된다”는 말로 문제를 정리해 버린다. 하지만 그런 언어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깊은 이해와 합의를 가로막는다. <납작한 말들>은 그 사실을 집요하게 상기시킨다. 다만 그 과정에서 독자를 꾸짖기보다, 왜 우리가 그런 언어를 선택하게 되었는지까지 함께 질문했다면 더 설득력 있는 책이 되었을 것이다.
이 책은 친절하지 않다. 명확한 대안도 제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불친절함 덕분에 독자는 자신의 언어를 점검하게 된다. 나의 말이 누군가를 납작하게 만들만큼 무겁지는 않은지. 앞으로 계속 마주하게 될 수많은 사회적 갈등 앞에서, 단순한 지적이나 훈계의 태도는 유압 프레스와 같다. 그저 모든 문제를 해결없이 찍어 누르기만 하는 그런 유압 프레스 말이다. 상호 이해와 협의를 전제로 한, 조금은 더 입체적인 태도로 접근할 수 있는지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자. 저자의 의도는 날카롭고 단정적인 어투 아래 깔려있지만, 난 이게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우리를 데려가려고 하는 목적지라고 생각한다. 그저 읽기만 한다면 이 책도 납작하지만, 읽고 곱씹으며 생각한다면 비로소 이 책은 입체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