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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학기 "독서후담" 당선작 <민주주의에 반대한다> 서평
  • 글쓴이 관리자
  • 작성일 2025-08-18 15:36:47
  • 조회수 276

<민주주의에 반대한다>를 읽고


김선재



 민주주의에 반대한다는 현대 민주주의에 대한 문제제기로 가득한 책이다. 제이슨 브래넌은 요즘의 민주주의가 무지하고 편향된 유권자들에 의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으며,  상황 속에서 시민들의 정치 참여가 늘어나는 것은 오히려 해로운 일이라고 주장한다. 현대 민주주의를 비판하고 나서는, 더 나은 대안이 있을 수 있다며 시민들의 정치적 지식에 따라 차등적으로 참정권을 부여하는 에피스토크라시를 주장한다.

 브래넌의 비판은 날카롭다. 그는 유권자를 세 유형으로 나눈다. 정치에 무관심하고 무지한 호빗’, 편향된 태도로 광적으로 진영 논리에 매몰된 훌리건’, 합리적이고 지식에 기반해 판단하는 이상적인 벌컨’. 그는 대부분의 시민이 호빗이나 훌리건에 해당하며, 벌컨은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특히 정치 참여는 호빗을 벌컨으로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훌리건으로 만들 뿐이고, 훌리건은 점점 극단적인 형태로 치닫는다고 경고한다.

 나는 이 주장에 일부 공감하면서도 완전히 동의할 수는 없다. 실제로 오늘날의 한국 정치 상황은, 많은 시민들이 정치에 무관심한 모습을 보이거나 진영 중심의 분노 정치에 빠져있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이것은 정치 참여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 구조와 정보 환경, 교육 시스템 등의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건강한 정치 교육의 부재, 정치적으로 치우친 미디어, 폐쇄적인 정당 구조 등이 시민의 정치적 성장을 방해한다. 시민이 벌컨이 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무능력 때문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도록 조성된 환경 때문이다.

 브래넌은 정치 참여가 시민을 더 나쁜 상태로 만든다고 본다. 이는 시민을 고정된 존재로 간주하는 태도이며, 정치 참여가 가진 학습적 가능성을 무시할 뿐이다. 나는 정치 참여가 오히려 시민의 정치적 역량을 길러내고,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정체성을 형성하게 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갈등과 실패, 오류는 시민 사회가 성숙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불가피한 현상이며, 이를 민주주의의 실패로 단정하는 것은 성급한 판단일 것이다.

 브래넌이 제안하는 에피스토크라시는 정치적 지식이 있거나 기준을 충족하는 사람에게 더 큰 권한을 부여하자는 제도이다. 하지만 정치적 지식이란 개념 자체가 이념적이고 계급적이며, 결코 가치 중립적이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이는 기득권의 언어와 관점을 제도화하는 수단일 뿐이다. 브래넌은 시민의 무지를 개인 책임으로 돌린다. 하지만 그것 역시 사회 구조의 산물이다. 교육 기회의 불균형, 정보 접근성의 격차, 정치적 소통의 단절은 시민의 무지를 구조적으로 재생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권리를 차등화하는 것은 이중 배제이며, 사실상 억압을 제도화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브래넌은 정치적 효율성과 결과의 정확성을 민주주의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그는 비합리적 대중의 잘못된 결정을 경고하며, 더 나은 결과를 낼 수 있는 통치 체계를 제안하려 한다. 그러나 정치는 단순히 정책 결정의 정확성과 속도를 위한 도구가 아니다. 정치는 다양한 가치와 이해관계가 충돌하고 조정되는 공간이며, 서로 다른 집단 사이의 공존을 위한 것이다. 정치는 본질적으로 불확실성과 긴장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다. 효율성만을 기준으로 정치 체제를 평가한다면 이는 정치를 지나치게 좁은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나는 지금의 민주주의가 완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의제 중심의 현재 제도는 권력 집중, 참여 제한, 시민 소외 등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제도적 불편을 넘어, 시민이 정치의 객체로 전락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렇기에 민주주의를 폐기할 것이 아니라, 더 민주적인 사회가 필요한 것이다. 권력을 분산시키고 참여를 확대하며, 교육과 책임을 공유하는 방향으로 민주주의가 재구성되는 것이 필요하다.

 브래넌은 동시대 민주주의의 현실적 문제를 직시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성찰의 계기를 제공한다. 그러나 그의 대안은 정치적 평등과 자유를 위협하며, 인간의 잠재성과 이상을 닫아버린다. 민주주의는 공동체의 가능성을 믿는 체제이며, 그 가능성에 지속적으로 투자하는 시스템이다.

 나는 민주주의에 반대하지 않는다오히려 더 강력하게 민주주의를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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