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보기

독서후담(讀書後談)

HOME > 교육 프로그램 > 독서후담(讀書後談)
2023-1학기 <독서후담> 당선작 - <존중받지 못하는 자들을 위한 정치학> 서평
  • 글쓴이 관리자
  • 작성일 2023-08-17 11:08:46
  • 조회수 443

<정체성의 사회에서 모두가 살아남기 위해서>

프랜시스 후쿠야마, 『존중받지 못하는 자들을 위한 정치학』을 읽고



이규원(대학원 생명과학과)

 


  이 책의 제목인 『존중받지 못하는 자들을 위한 정치학』을 처음 보았을 때 존중받지 못하는 자소수자혹은 사회적 약자를 의미할 것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약자들의 정치학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에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책의 초반부에 존중받지 못하는 자는 어떤 이들을 지칭하는지 나타난다. 바로 존엄성과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존중받고 싶어하는 자를 나타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책의 제목이 말하고자 하는 바와 바로 연결되지 않는 다는 점에서 조금 아쉬움을 느낀다. 책의 원제는 ‘Identity’, 말그대로 정체성이다. 이 단어를 살려 정체성의 정치학혹은 존엄의 정치학이라고 제목을 지었다면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영국의 유럽연합탈퇴, ISIS의 등장 등 비교적 최근에 일어난, 다소 이해하기 힘든 국제적 이슈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에서 시작된다. 과거 경제학자들은 정치를 움직이는 원동력 중 가장 영향력이 큰 것은 경제적 동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의 정치는 인간이 경제적 효능을 최우선으로 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감정적인 요구를 들어주는 정치인의 편을 들어주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이것을 분노의 정치라고 말한다. 어떠한 정체성을 가진 집단을 특정하여 그 집단의 존엄성이 무너지고 있으며,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본인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정치인의 모습, 그리고 그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 유권자들의 모습은 전세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애초에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자보다 자신이 가진 무언가를 빼앗길 거라는 두려움을 가진 자가 더 큰 분노를 표출한다. 그것을 이용한 것이 분노의 정치’, 그리고 정체성의 정치인 것이다.

  저자는 정체성의 정치가 무엇인지 설명하기 위해 정체성의 역사부터 되짚어 본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정체성이란 아주 익숙한 단어이다.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진정한 나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관해 끊임없이 생각하도록 학습 받는다. 하지만 인류에게 본인의 정체성을 생각할 기회가 주어진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았다. 불과 몇 세기 전만 해도 수많은 국가가 계급 사회였으며 대부분의 인간은 주어진 계급에 맞는 일을 하고 태어난 곳에 평생 벗어나지 못했다. 현대 사회의 인간들은 이를 매우 답답하고 견딜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주어진 선택지가 한정되어 있다면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쉬울 것이다. 현대 사회인의 문제점인 선택지가 너무 많아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말이다. 하지만 종교개혁과 민주주의의 출현 이후로 모든 인간에게 정체성과 존엄성이 부여됐고 세계 곳곳에서 자신이 가진 정체성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투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저자는 이것이 우월욕망의 세계에서 대등욕망의 세계로 넘어간 것이라고 표현한다. 우월욕망이란 자신이 남들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망이며 과거 계급사회에서는 귀족 계급만이 이것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남들보다 우월해지기 위해 남들을 짓밟는다면 반발이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을 통제한 것이 계급주의이며 그 당시의 인간들은 태어나길 귀한 사람과 천한 사람이 나뉘어졌다고 믿어 우월한 사람들에게 반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종교개혁과 상업의 발달로 인해 인간은 내적자아와 외적자아, 즉 본인 스스로가 탐구한 본인의 자아와 사회가 부여한 자아를 분리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의 내적자아의 발달이 오늘날의 민주주의를 완성시켰다고 봐도 무방하다.

  오늘날 일어나는 전쟁, 테러리즘은 대부분 내적자아인 정체성과 외적사회의 충돌로 인해 발생한다. 가령 현재 진행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역시 민족 정체성에 대한 갈등이 극단적으로 심화된 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내적자아를 억눌러 정체성이 없던 그 시절로 돌아가야 할까? 그것은 옳다고 할 수 없다. 정체성이 없던 시절은 분명 인류사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인류에게 정체성이 없는 상태는 그렇게 특별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시절의 많은 이들은 이유 없이 핍박받고, 죽고, 억울한 인생을 살아가야만 했다. 그 시절 정체성을 깨닫고 자아를 표출하던 사람들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쫓겨나야 했을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는 전세계 70억명의 개개인이 정체성에 대해 인지한 이상 그것을 억누르려 해도 그러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모두가 정체성을 가진 채로 조화롭게 살아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로, 우리는 우월욕망이 아닌 대등욕망을 우선시해야 한다. 과거 계급주의 사회에서는 공익을 위해 본인을 희생한자들이 귀족이 되어 후대까지 우월한 지위를 누릴 수 있었다. 희생정신이 바로 우월성을 내세울 수 있는 근거가 되었던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계급 주의가 사라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을 인지하고 있다. 바로 자본주의로 인해 발생한 부의 격차가 그 계급을 만들어낸다. 돈이 많은 자본가들이 우월욕망을 표출하기 위해 돈이 없는 사람들을 상대로 갑질을 하는 수많은 경우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이는 많은 이들에게 분노를 일으키곤 한다. 그 분노는 우월성을 받아들일 수 없음에서 발생한다. 현대 사회의 귀족인 부자들은 그 우월성을 본인들의 목숨을 희생해서 얻은 것이 아니다. 그들이 계속해서 우월성을 표출한다면 대등욕망과의 충돌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우월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억지로 막을 수는 있는지 의문이 들 것이다. 나는 그것이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스웨덴의 어느 유명 배우가 미국에서 큰 상을 받았지만 스웨덴에 돌아가서는 그 트로피를 숨겨야 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바로 얀테의 법칙이라는 북유럽의 문화 때문이다. ‘얀테의 법칙은 아래와 같다.


당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말 것

당신이 남들만큼 좋다고 생각하지 말 것

당신이 남들보다 더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말 것

당신이 남들보다 더 훌륭하다고 상상하지 말 것

당신이 남들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 것

당신이 남들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말 것

당신이 모든 일을 잘한다고 생각하지 말 것

남들을 비웃지 말 것

누군가 당신을 도와줄 거라고 생각하지 말 것

당신이 남에게 뭐든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 것


  보다시피 얀테의 법칙은 우월욕망을 억누르고 대등욕망을 중요시하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이 법칙이 우습게 보일수도, 말이 안 된다고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법칙이 뿌리내린 북유럽 국가들에서 행복지수가 높은 것을 보면 대등욕망이 다수의 사람들의 불만족을 해소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의 정체성에 매몰되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정체성으로 인한 갈등은 대부분 개인이 그 정체성과 본인을 동일시하기에 일어난다. 물론 그 정체성이 나를 설명해주는 것은 맞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의 정체성만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예를 들면 나는 한국인이며 대학원생이며 20대이며 누군가의 자식이고 누군가의 친구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연구실에서 보내기에 나의 정체성이 대학원생에 한정되어 있다는 기분을 종종 느끼곤 한다. 이런 생각은 곧 신세 한탄으로 이어지고 나의 정체성, 혹은 정체성을 부여한 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진다. 연구가 잘 안 풀릴 때에는 대학원생으로서의 억울함만 극대화하게 된다. 하지만 나에게는 분명 다른 정체성이 있다. 대학원생이라는 정체성이 없어져도 나는 나다. 가령 내가 이민을 가서 한국 국적을 잃게 되더라도 나는 나다. 정체성 그 자체를 나라고 여길 필요는 없는 것이다. 많은 국가들이 민족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중이다. 나는 그것이 정체성의 갈등을 약화시킬 수 있는 중요한 걸음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이미 인구과잉 상태에 도달했다. 그리고 수많은 개인이 수많은 정체성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다. 앞으로도 정체성으로 인한 갈등은 계속될 것이고 어쩌면 더욱 심화될지도 모른다. 이 갈등을 피하기 위해 인구수를 억지로 줄인다거나 개개인의 정체성을 억압하는 것은 영화나 소설에서 나오는 디스토피아를 만들 뿐이다. 우리는 정체성을 지닌 채로 조화롭게 살아가야 한다.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정체성이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는지 인지한다면 수많은 갈등의 해결 방안을 더 빨리 생각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끝)


목록





이전글 2023-1학기 <독서후담> 당선작 발표
다음글 2023-1학기 <독서후담> 당선작 - <나는 어떻게 성형미인이 되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