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보기

독서후담

HOME > 교육 프로그램 > 독서후담
2021-2학기 <독서후담> 서평 공모 당선작 전문 게재 : <지구 끝의 온실>
  • 글쓴이 관리자
  • 작성일 2022-08-09 17:34:53
  • 조회수 342

대상도서 : 김초엽, <지구 끝의 온실>


식물을 닮은 사람들의 이야기


임수정



식물이 주인공인 영화나 소설을 본 적이 있는가? 아마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다.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동물과 달리, 한 자리에 죽을 때까지 머무는 식물은 왠지 모르게 재미없어 보이고, 심지어 생명체보다는 물건 같기도 하다. 하지만 원예학을 전공하신 김초엽 작가의 아버지께서는 ‘식물은 뭐든 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김초엽의 신작 ‘지구 끝의 온실’은 지구의 마지막 순간에 지구를 지켜낸 ‘모스바나’라는 식물과, ‘모스바나’를 닮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구 끝의 온실’은 강원도 해월에서 발생한 ‘모스바나’ 이상증식 현상을 식물학자 아영이 조사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그려진다. 아영은 더스트로 인해 폐허가 되었던 지구가 다시 회복된 이후 미래의 생태연구학자이다. 아영이 살기 이전, 지구는 한 연구실에서 유출된 자가 증식 나노 입자인 더스트로 뒤덮였고, 이로 인해 돔(보호 시설) 안에 들어가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죽고, 서로를 죽였다. 또 돔 안의 사람들은 자신이 살기 위해 돔으로 들어오려는 사람들을 죽였다. 아영이 더스트 시대와 ‘모스바나’를 연관 짓게 된 계기는 어릴 적 이희수라는 노인의 정원에서 봤던 푸른 불빛이었다. 과학자라는 직업에 맞지 않게 괴담과 기묘한 이야기가 있는 사이트에서 푸른 불빛을 검색하던 아영은 랑가노의 마녀들 이야기를 찾게 되고, 그들을 찾아간다.


랑가노의 마녀들이라고 불리는 나오미, 아마라 자매는 더스트 시대를 살아온, 그리고 생존한 사람들이었다. 또한, 본격적으로 첨단 기술이 과오를 인정하고 더스트 문제를 해결하기 전까지 끊임없이 해독제를 만들고 모스바나를 지구에 심어왔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오랫동안 돔 밖을 떠돌다가 ‘프림 빌리지’라고 불리는 마을을 찾아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곳은 돔 밖에서 유일하게 평범한 일상을 보낼 수 있는 곳이었고, 커다란 온실과 식물학자 한 명이 있어 마을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식물을 키운다고 했다. 더스트가 점점 심해져 마을까지 위험해진 때에, 마을 관리자인 지수 씨는 식물학자에게서 ‘모스바나’라는 이상하고 만지면 따가운 식물을 받아 마을 곳곳에 심었고, 마을은 ‘모스바나’ 덕분에 더스트 폭풍에서 살아남았다. 심어진 ‘모스바나’는 밤마다 마을을 푸른 빛으로 물들였다.


영원할 것 같은 마을도 내성종 사냥꾼과 침입자가 늘어나면서 위기에 처하고, 떠나려는 사람들이 생겼다. ‘프림 빌리지’가 사라질 위기에서 지수씨는 떠나는 사람들에게 마을에서 키운 식물들과 ‘모스바나’의 씨앗을 주었다. 그리고 지구 곳곳으로 떠난 사람들을 따라 ‘모스바나’는 전 세계에 피어났다.


책에서 ‘모스바나’는 가장 더스트를 닮은 식물로 표현된다. 모스바나는 온실 속 식물학자 레이첼이 유전자 조합으로 만들어낸 식물로, 더스트처럼 빠르게 번식하고 퍼져 나갔으며, 어디든지 잘 침투하는 식물이었다. 무엇보다 다른 식물들에 비해 더스트 환경에서 잘 자라는 식물이었다. 하지만 ‘모스바나’는 자신의 경쟁력을 만드는 더스트라는 환경 자체를 스스로 파괴하는 모순적인 식물이었다. ‘모스바나’는 더스트를 응집하게 하여 생물들의 체내에 침투하지 못한 채 땅으로 떨어지게 하고, ‘모스바나’의 뿌리는 더스트가 땅속에서 완전히 분해되도록 도왔다. ‘모스바나’로 인해 더스트는 감소했고, 다른 종류의 식물들이 다시 자라나기 시작했으며, 사람들은 다시 우점종이 되려는 노력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모스바나는 자신의 영광의 시대가 끝났을 때, 기꺼이 자신의 자리를 다른 생명체들에게 내어 주었다.


과연 세상에 자신이 가장 빛날 때 기꺼이 자신의 자리를 내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생존과 번영에 대한 욕구를 동기 삼아 진화해 온 우리 인간은 모스바나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렵다. 지금까지도 우리는 생존을 위해 다른 생명체들을 짓밟고 우점종을 유지하고 있다. 심지어 우리 인간들 사이에서도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밟고 위로 올라가려 하고, 높은 자리를 계속 유지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많은 생명체가 몸이든 마음이든 다치고 설 자리를 잃었다. 하지만 인간이 우점종으로서 미처 생각조차 못한 일을 모스바나는 자신의 운명인 것처럼 해내고 있었다. 모스바나는 번영기에 자신의 자리를 양보함으로써 생태계를 지켜냈고, 그런 모스바나를 닮은, 서로의 약속을 기억하고 지구 곳곳에서 ‘모스바나’를 심고 사람들에게 해독제를 나눠준 ‘프림 빌리지’ 사람들의 노력이 지구를 숨쉬게 만들었다. 이렇게 소설에서는 인간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함께 생존하는 것을 선택한 ‘모스바나’를 통해, 인간들이 선택한 길과는 다른 존재 방식이 있음을 제시한다.


김초엽 작가의 소설을 추천하고자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현실감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바뀔 미래를 그린 소설과 영화는 많지만, 김초엽 작가의 소설들은 내가 본 SF소설 중에 가장 현실적이었다. 소설 속 인물들은 하늘을 나는 자동차(호버카)를 타고 다니지만, 우리와 똑같이 교통 체증을 걱정한다. 또한, 인물들은 우리처럼 출근하고, 일하고, 일상적인 대화를 나눈다. 그래서 우리는 책을 읽으며 ‘어쩌면 김초엽 작가가 그린 미래가 머지않아 우리의 현실이 되겠구나’라고 생각하거나, ‘우리의 후손들도 결국 우리와 같은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김초엽 작가의 소설은 공상 과학 소설이지만 이상하게 사람 냄새가 많이 난다. 지금은 당연해진 기술들이 지금까지 그래 왔듯 기술은 세상의 명암을 동시에 보여줄 것이고, 그런 세상을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기술이 영웅이나 악당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에게 미칠 영향에 대해 더욱 고민하게 된다.


두 번째는 인물 표현이다. 정확히 말하면 김초엽 작가가 인물들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책 속의 ‘윤재’라는 인물은 더스트 생태학자이자 아영의 선배이다. ‘윤재’는 여자일까, 남자일까? 지수 씨를 도와 마을을 관리하는 덩치 크고 얼굴에 흉터가 있는 ‘대니’는? 답은 둘 다 여자이다. 김초엽 작가의 소설 속 인물들은 대부분 그들의 이름과 역할 또는 직업만으로 표현된다. 또 이름만으로는 성별을 짐작하기 어려운 중성적인 이름을 가진 인물이 많고, 사람을 지칭할 때 ‘그’와 ‘그녀’를 크게 구분 지어 사용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인물들의 성별을 이름과 직업을 통해서 짐작하며 읽게 되는데, 나는 김초엽 작가의 소설을 읽을 때 이름이나 직업에 대한 편견으로 인해 인물의 성별을 잘못 짐작할 때가 많았고, 그 때마다 스스로에게 놀라고 반성하곤 했다. 이런 경험을 여러 번 하다 보면 우리는 점차 인물의 성별은 이야기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음을 깨닫게 되고, 인물의 정체성이 되는 이름과 인물의 역할, 생각, 마음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지구 끝의 온실’은 무너진 지구를 다시 재건하는 사람들과, 그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환경 보호를 주장하는 소설은 아니다. 또한, 기술 발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소설도 아니다. 물론 기술의 명암이나 환경 문제에 대한 지적도 일부 녹아들어 있긴 하지만, 그 부분은 핵심이 아니다. 다만 이 소설은 인간들에게 지금과는 다른 생존 방식을 제안한다. 다른 생명체, 다른 인간들을 밟고 생존해 온 인간들에게 이제는 ‘모스바나’를 닮아보면 어떨지 물어본다. 우리에게 가장 빛날 때, 기꺼이 자신의 자리를 내어 줄 수 있는 용기를 가졌는지 물어본다.



목록





이전글 2021-2학기 <독서후담> 서평 공모 당선작 전문 게재 : <별것 아...
다음글 2022-1학기 <독서후담> 당선작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