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포스텍 SF 어워드 최종 수상작 안내드립니다.
수상하신 분들 모두 축하드리며, 제1회 포스텍 SF 어워드에 관심 가져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구분 | 작품명 | 이름 | 소속 |
SF 단편소설 | 당선작 | 어떤 사람의 연속성 | 이하진(필명) | 경북대학교 물리학과 |
가작 | 구멍 | 황수진 | 한국과학기술원 전산학부 |
SF 미니픽션 | 당선작 | 식(蝕), 유리수가 꾸는 꿈 | 박경만 | 서울대학교 전기정보공학부 |
가작 | 기술이 사람을 만든다, 새달맞이 | 이한나 |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전자공학과 |
* 심사위원 김초엽 심사평
-가상의 과학기술 묘사에서의 디테일이 돋보였다. 특히 연구 현장이나 기술에 관한 인물들의 대화에서 과학기술의 개발 및 연구 과정의 디테일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 많았다. 다만 아쉽게도 그런 디테일이 소설의 완성도와 연결된 경우는 많지 않았다. 작가가 과학기술에 관한 배경지식이 있더라도 실제로 그것을 소설에 녹여내는 일은 또 다른 부단한 연습과 훈련이 필요한 일임을 실감했다. 한편으로는 이제 막 소설쓰기에 도전하는 이공계 출신들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해서 긍정적으로 보고 싶다.
-수상작을 결정할 때는 소설로서의 완성도를 가장 중요하게 보았다. '어떤 사람의 연속성'은 상위 차원이라는 SF적 아이디어를 서정적으로 잘 풀어나갔고 독자에게 울림을 주는 결말에 도달하여 좋은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구멍'의 경우 아이디어는 갑자기 지구에 구멍이 나타난다는 것으로 다소 평범했지만 그로부터 이어지는 다양한 사건들을 재미있게 펼쳐냈다.
-미니픽션 수상작 '식'은 짧은 분량 안에서 잘 짜인 이야기와 반전을 갖춘 소설이었다. '기술이 사람을 만든다'는 동시대의 중요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으면서도 흥미진진하게 읽혔다.
* 심사위원 김초엽 서면 인터뷰
1. 최근 SF문학이 주목받는 이유?
여러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SF문학이 주목받기 전에도 영화 등의 영상매체에서는 SF가 인기가 많았고, 어느 정도는 SF 장르가 인기를 얻을 만한 토대가 준비되어 있었다고 생각해요. 특정한 계기가 있다기 보다는 최근 몇 년간 좋은 작가들이 많이 등장했고, 독자 분들이 찾아 읽어주셨고, 그래서 또 다른 작가들이 등장하는 선순환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2. SF 창작에서 이공계 전공자가 가질 수 있는 장단점과 심사 소감
이공계 전공 출신이 과학소설을 쓸 때 가질 수 있는 강점이라고 한다면 과학이나 기술 묘사에서의 디테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디테일이 반드시 현실에 기반할 필요는 없고요. 심사작에서도 가상의 과학이나 가상의 기술에 대해서도 디테일을 강하게 밀어 붙여서 추구한 소설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아쉬운 점은, 그런 디테일들이 실제로 서사의 완성도와 연결된 경우는 많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소설에서 구현하는 가상의 과학이나 기술을 정밀하게 묘사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그게 소설 전체의 서사와 연결이 되어야 합니다. 전반적으로 과학이나 기술 묘사에 공을 들인 반면 이야기 자체는 평이하거나 혹은 재밌게 흘러가다가도 결말에서 갑자기 힘이 빠지는 소설이 많았습니다. 소설 창작은 지식을 얻는 것과는 또 다른 기술의 영역이므로, 많은 훈련이 필요합니다. 특별히 소설 창작을 따로 배우지 않더라도 작법서 등을 읽고 습작, 작품 분석을 하며 갈고 닦는 긴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이공계 전공을 한 경험으로 이야기를 하자면, 과학을 전공했다는 건 과학소설을 쓸 때 장점이 될 수도 있고 단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오히려 배경지식이 있다 보니 뭐가 틀렸고 뭐가 안 되는 건지 알기 때문에 상상력에 제약을 받게 되기도 합니다. 이번 응모작에서 유난히 인공지능 이야기가 많은, 소재 편향이 눈에 띄었고, 과감하게 멀리 가는 이야기들이 적다고 느꼈는데요. 혹시 응모자들의 지식이 다양한 SF 소재에 도전하는 데에 제약을 걸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예전에 양자역학과 SF에 대한 토크를 한 적이 있는데, 제가 생각하기에 SF에서 양자역학 소재를 재밌게 잘 살린 소설들을 소개했더니 과학자 분께서 실제로는 다 과학적으로는 말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소설들은 어쨌든 소설로서는 좋은 SF로 평가받습니다. SF에서는 일부러 알면서도 틀릴 수 있다는 것이고요. 그런데 어디까지 틀려야 개연성이 있게 보이는지, 어느 정도로 사실적으로 서술해야 하는지 그 미묘한 균형을 잡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 점을 계속 고민하면서, 이공계 출신 작가들은 나의 배경지식이 오히려 내 상상력을 제약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면서 소설에 도전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3. 당선작 선정의 기준은?
심사위원들마다 중요하게 본 포인트가 달랐습니다만 저는 소설로서의 완성도와 재미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설령 아이디어가 독창적이어도 한 편의 소설로서 독자에게 전달되기 어렵다면 수상작으로 선정하기는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SF에서의 독창성은 결국 기존 SF 장르에 대한 풍부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설령 자신이 인공지능에 대해 많은 배경지식과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기존 SF에서 인공지능을 어떻게 다루었는지를 전혀 모른다면 독창적인 인공지능 SF를 쓰기는 어렵습니다. 과학기술을 전공했다는 건 SF의 세계를 탐험하고 조사할 때 약간의 어드밴티지를 얻는다는 정도로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실제로 SF의 많은 과학기술들은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약한 가능성으로만 제시된 가상적인 과학이 많습니다.
4. SF에 도전하려는 후배들 그리고 <포스텍 SF 어워드>에 당부하고 싶은 말은?
저는 처음부터 전업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글과 함께 병행할 본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요. 다만 1년에서 2년 정도는 글에만 투자할 수 있는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준비되었고 또 기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때 작가로서 본격적인 도전을 해보았습니다.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겠지만 ‘이 길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보다는 플랜 B를 함께 준비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경험이 열어주는 뜻밖의 기회가 있는 법이니까요. 그러면서도 어느 순간에는 과감하게 새로운 도전을 해보는 결단력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저도 재학생 때 교내 공모전에 도전하면서 소설 쓰기를 처음 시도해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이제 작가가 되는 단일한 방법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신춘문예나 대형 공모전을 통과한다고 해서 작가로 자리 잡는 것도 아니고, 주목받지 못하는 작은 지면에서 시작해도 독자들의 호응을 받을 수 있고요. 무엇이 되었든 여러 기회를 놓치지 말고 하나하나 시도하며 나와 맞는 독자들을 만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 같아요. <포스텍 SF 어워드>가 새로운 도전을 하고자 하는 이공계 학생들에게 그러한 좋은 기회 중 하나로 자리 잡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심사위원 박상준 심사평
아이디어에 앞서 기본기부터 다지자
- 제1회 포스텍SF어워드 심사를 마치고
새롭게 시작하는 공모전에는 늘 새로운 기대라는 설렘이 있다. 특히 이번 포스텍SF어워드는 단편소설과 함께 ‘미니픽션 2편 세트’라는 공모 분야, 그리고 이공계 학부 및 대학원생이라는 응모자격이 흥미로웠다. 이전에 비슷한 성격의 공모전을 경험해 본 터라 어느 정도는 장단점이 예상되었는데, 심사를 마치고 보니 그런 예상이 상당 부분 들어맞은 것 같다.
예심을 진행하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좋은 아이디어들에 비해 글 쓰는 기본기가 아쉽다는 점이었다. 단편 및 미니픽션 분야가 공히 그러했다. SF소설은 문장, 구성, 인물 등 문학 작품으로서 당연히 갖춰야 할 기본적인 요건들이 우선 일정한 수준에 올라있어야 한다. 이런 조건을 충족한 상태에서 그다음 단계로 독창성이나 이야기 전개 등에 주목하게 하는 작품은 많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일독하자마자 ‘본심에 올릴만한 수작이다’ 싶은 작품은 사실상 찾아보기 힘들었다.
고심 끝에 단편 분야에서 ‘메쉬’, ‘완벽한 번역’, ‘하민 그리고 제레의 취미’ 세 편을 본심에 올렸다. 동영상 플랫폼의 알고리듬이 강한 인공지능으로 발전한다는 내용의 ‘메쉬’는 잘 정제된 글은 아니었지만 이야기의 힘이 있어서 주제를 비교적 잘 전달하는 작품이었다. ‘완벽한 번역’은 흥미로운 아이디어에 비해 전반적으로 짜임새가 부족했다. ‘하민, 그리고 제레의 취미’는 색다른 분위기를 견지한 점이 관심을 끌었지만 흡인력은 기대에 못 미쳤다.
미니픽션 분야에서는 ‘2^23’과 ‘기억추출학연구실’, 그리고 ‘스노우맨’과 ‘New Fresh Meat’를 본심에 올렸다. 두 세트 모두 한 작품이 그나마 신선한 아이디어를 담은 반면 나머지 한쪽은 그에 못 미치는 수준이라 아쉬움이 컸다. ‘2^23’과 ‘New Fresh Meat’가 그나마 각각의 세트에서 상대적으로 돋보였다.
본심 과정에서는 단편 분야의 경우 심사위원들 간에 의견이 꽤 갈리는 편이었다.
‘시베리아의 우주선’은 이야기를 끌어가는 능력이 돋보였지만 개의 지능 설정 부분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차라리 동화나 우화 형식이었다면 핍진성이 좀 느슨하게 적용되어도 괜찮았을 거라는 안타까움이 남는 작품이었다.
‘거의 모든 세상’은 흥미진진한 아이디어를 담고 있는데 비해 캐릭터가 낡은 스타일인 것이 약점으로 지적되었다. 기본 설정은 살리되 새롭게 다시 쓴다면 더 나은 작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구멍’은 SF에서는 별로 낯설지 않은 설정을 택해서 비교적 이야기를 잘 끌어나갔다. 좀 거친 면면들은 있으나 논의 끝에 가작으로 정했다.
‘어떤 사람의 연속성’도 설정은 참신한 편이 아니었지만 인물이나 구성 등이 전반적으로 양호했다. 심사위원진 다수의 지지를 얻어 대상작으로 낙점되었다.
미니픽션 부문 본심에서는 ‘식’과 ‘유리수가 꾸는 꿈’이 별 이견 없이 대상으로 선정되었다. 특히 ‘식’은 이번 공모전의 최대 성과라 해도 될 정도로 돋보였다. 도입부는 너무나 상투적이었으나 곧장 이어지는 내용에서 강렬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독자의 눈앞에 생생한 장면이 떠오를 정도로 압도적인 이미지 묘사가 훌륭했다. 미니픽션이라는 형식에 최적화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기술이 사람을 만든다’는 설득력이 좀 아쉬웠지만 문제의식의 의미심장함이 심사위원진의 고른 지지를 얻어 가작에 올랐다.
이밖에 ‘그가 자해를 한 이유’는 대칭성 파괴라는 발상이 주목을 끌었고 ‘자각’이나 ‘꿀벌이 사라지는 날에 우리는’도 각각 스타일 및 메타포가 흥미로운 편이었다. ‘유성의 주인’은 눈길을 끄는 아이디어를 담고 있었으나 처음에 ‘게 가공선’의 구절을 인용한 의도는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아쉬움도 남지만 향후를 기대할 만한 품격의 당선작을 내어 기쁘다. 꼭 작가 지망생이 아니더라도 이공계 전공자에게 스토리텔링 능력은 중요한 것일 터이다. 이번 공모전에 응모한 것 자체가 이미 소중한 경험이니만큼 그 감흥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상상력은 세상을 바꾸기 전에 먼저 우리 자신부터 바꾸는 놀라운 힘을 갖고 있다.
* 심사위원 정보라 심사평
이미 미래가 현실이 된 시대에 SF를 쓴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거의 모든 것이 상상되고 발명된 시대에 아주 새롭고 기발한 어떤 생각을 해낸다는 것 자체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이공계 전공자들이 집필한 SF라서 그런지 응모작 대부분이 뛰어난 지식과 돋보이는 과학적 발상을 특징적으로 보여주어 읽으면서 매우 흥미로웠다.
그러나 과학적 발상을 이야기로 쓴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아무리 기발하고 새로운 생각이라 해도 독자가 이해할 수 없으면 이야기로서 성공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리고 SF문학은 어쨌든 문학이다. 과학기술적 발상의 신선함과 기발함만을 평가하고자 했다면 SF소설이 아니라 프로젝트 기획서를 공모했을 것이다. 문학에는 주제의식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소재와 주제의식을 기승전결의 구성과 전개를 이용하여 독자에게 전달해야 한다. 논설하지 않고 강연하지 않고 이야기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부분일 것이다.
이 부분에 중점을 두고 심사를 진행했다. 새롭고 기발한 발상과 그러한 발상의 배경이 되는 과학적 현상이나 사실에 대한 깊은 지식은 대부분의 응모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발상과 과학지식을 대하는 태도, 인간에 대한 세심하고 따뜻한 관점, 그리고 이야기꾼으로서 작가의 능력을 보여주는 작품은 흔치 않았다. 언제나 흔치 않다.
단편 부문 대상 당선작 <어떤 사람의 연속성>은 소재나 발상 자체는 아주 새롭다고 할 수 없지만 인간을 대하는 태도와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다름’에 대한 포용의 문제, 수도권과 지방의 지역차별에 대한 비판적 의식, 재난을 대하는 사회적 태도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이 주인공들의 강한 감정적 관계에 대한 섬세한 묘사와 대비되었다. 결국은 주인공이 자신의 능력을, 그 ‘다름’을 이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리라고 예상할 수 있었지만, 예정된 결말이 식상함이 아니라 독자에게 만족스러움을 안겨주며 끝맺는 작품이었다.
단편 부문 가작 <구멍> 역시 다른 세계로 통하는 구멍이라는 발상 자체는 SF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소재이다. 그런데 <구멍>은 내가 심사한 작품들 중에서는 이야기꾼으로서 작가의 능력이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길지 않은 단편 분량 안에서 연속적인 사건들이 박진감 있게 연결되고 결말까지 독자를 쥐락펴락하며 끌고 가는 필력이 만만치 않아서 읽으면서 가장 즐거웠던 이야기였다. 문학상을 수여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심사했으므로 주제의식이나 세계와 인간에 대한 관점 등을 고려해야만 했으나, 뛰어나게 재미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는 심사위원들 사이에 이견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최종심사 회의에서 들은 내용으로 추정해 보면 심사위원마다 심사한 작품들의 대체적인 경향이 각각 달랐던 듯하다. 내가 심사한 작품 중에는 유독 세계종말이나 지구종말, 세상의 위기에 대한 작품들이 많았다. 팬데믹이나 기후위기 등 현재의 상황을 반영한 경향이라고 생각하는데, 작품에서 위기나 재난 상황을 게임 속의 퀘스트처럼 대하는 경우는 공감하기 힘들었다. 재난영화나 수퍼히어로 SF영화에서 흔히 보는 방식으로 박진감 있지만 진부하게 줄거리를 전개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예를 들어 우리가 지금 팬데믹의 시대를 살고 있는데, 누군가는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사업이 망하고 누군가는 병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기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든 일상이 변했고 변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 상황을 팔짱 끼고 구경하면서 즐기는 사람이 있다면 분노하지 않기는 힘들 것이다. 재난이나 위기는 신문의 뉴스 한 줄, 화면의 영상 몇 초로 끝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여러 사람이 죽고 다치고 병들고 고통받기 때문에, 그리고 그 후유증이 개인과 공동체에 오랫동안 상처를 남기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재난 SF를 쓸 때는 이 점을 기억해야 한다. 재난이나 위기를 그저 흥미롭게만 묘사하는 경우 일반 출판사의 투고작이라면 잘 팔릴 만한 작품으로 출간할 수도 있겠지만 문학상을 수여하기는 힘들다.
여기에 더하여 미니픽션의 경우 작품 분량이 짧기 때문에 줄거리 구성의 문제가 더욱 중요하게 부각되었다. 최종 심사회의에서 나온 의견을 인용하자면 “짧은 분량 안에 설정만 늘어놓다가 끝나는” 응모작들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분량이 짧다고 해서 쓰기 쉬운 건 절대 아니다. 오히려 분량이 짧으면 그만큼 완결된 이야기를 만들기 어려워진다.
미니픽션 부문 당선작 <식(蝕)>은 그런 점에서 작품의 완결성과 이미지의 선명함이 돋보인 수작이었다. 짧기 때문에 더욱 강렬했고 한 번 읽고 나면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인상을 남기는 작품이었다. 종말을 앞에 둔 인간의 절박함과 용기, 치명적으로 위험하기 때문에 더욱 아름다운 존재의 신화적인 모습을 과학적으로 짧지만 명료하게 설명한 필력도 훌륭했다. 같은 작가의 작품 <유리수가 꾸는 꿈>은 기발한 발상을 마치 실제로 연구된 보고서처럼 천연덕스럽게 이야기하는 구성력이 즐거운 작품이었다. 미니픽션 부문에 세트로 제출된 두 작품이 서로 전혀 다르면서도 완성도 차이가 거의 없어 심사위원들이 별 이견 없이 두 작품 모두 대상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미니픽션 부문 가작 <기술이 사람을 만든다>는 주제의식과 설득력 있는 전개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응모작 중에 장애인을 포함하여 소수자를 등장시킨 작품은 여럿 있었다. 그런데 장애당사자의 입장에서 정상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비판적인 의식을 전면에 내보인 작품은 <기술이 사람을 만든다>가 유일했다. 주류의 입장에서 기술이나 과학을 마치 소수자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처럼 사용하며 자기도 모르게 소수자를 내려다보는 관점을 내비치는 작품은 이제 받아들일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기술이 사람을 만든다>는 그런 측면에서 미니픽션의 짧은 분량 안에 당사자인 소수자가 겪는 어이없는 상황을 매우 현실적으로 묘사했다. 주인공이 결국은 주류의 요구를 받아들여 일방적인 “정상”의 기준에 자신을 맞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독자로서 대단히 공감이 가는 방식으로 전개되어 씁쓸하면서도, 아주 짧은 분량 안에서 하나의 상황에 초점을 맞추어 차별의 문제를 전면에 내보이는 작가의 필력에 감사했다.
멋진 작품들이 선정되어 보람찬 심사 과정이었다고 조금은 자화자찬하고 있다. 우수한 작품들을 응모해 주신 작가님들께 감사드리며, 선정되신 분들도, 그리고 이번에 아쉽게 기회를 놓치신 분들도, 모두 계속해서 연구와 집필에 정진하시기를 기원한다. 세상에 이야기는 많지만,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정말 새롭고 정말 좋은 이야기는 만나기 어렵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