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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2학기 "독서후담" 당선작 -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서평
  • 글쓴이 관리자
  • 작성일 2025-02-06 10:54:11
  • 조회수 168

보편적인 사랑의 힘



장서현



  “평범하게 살고 싶은 게 내 꿈이야.”라고 말하는 친구가 있었다. 이 말을 들은 고등학생의 나는 예상치 못한 대답에 겉으로는 긍정적인 놀라움을 보였지만, 속으로는 꿈이 없는 친구에게 안타까움을 느끼며 혀를 찼다. 그때의 나는 ‘평범함’이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하며, 역설적으로 너무나 어려운  것인지 알지  못했다. 스물보다 서른이  더  가까워진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내가  참  가소로우 면서도 부럽다. 타인의 꿈을 쉽게 재단할 만큼의 대단한 자신감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으며, 그때의 나의 꿈은 얼마나 크고 아름다웠던 것일까.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에 비하면 자신감도 많이 줄어 들었고, 꿈도 소박해졌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사회의 쓴맛을 알아버리고 변화하는 내 자신을 바 라보면  우울했는데,  이제는  그런  부정적인  감정은  사그라들었다.  ‘평범함’의  위대함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잘 생각해보면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평범한 사람들’로부터 나온다. 지금 이 대한민국을  정도(正道)로 이끄는 힘도  평범한  사람들의  손에  들린  불빛에서,  그리고  그들의  체온이  모여 만든 뜨거움에서 나오고 있다.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은 이토록 평범하지만 동시에 비범한 사람 들의 이야기를 잘 녹여냈다.

  어린아이의 사랑을 ‘순수한 사랑’이라 부르는 이유는 재지 않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는 부모님으 로부터  내리사랑만  받아봤지,  상처를  입은  경험이  없기에  좋아하는  사람에게  밀고  당기는  것  없 이 그저 사랑을 퍼준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는 사람과 관계, 더 크게는 세상과의 관계에 서 생채기가 난 경험이 조금씩 있다. 그래서 사랑을 퍼주는 것을 주저한다. 준 만큼 돌려받지 못 할까봐. 그러면 너무 아플까봐. 「세상 모든 바다」에 등장하는 한일 반반의 정체성을 지닌 하쿠는 자신에게 편견 없이 다가와주는 영록이 고마웠고, 그래서 그의 죽음에 더욱 죄책감을 느꼈다. 늦 었지만 영록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자 머나먼 그의 고향으로 가지만, 기회가 생길 때마다 주저하 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  한  채  돌아온다.  하쿠는  그런  자신에게  조금  실망한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하쿠가 영록을 찾아 먼 길을 나선 것, 그가 선물해 준 세모바 플래그를 버리지 않은 것,  그리고  오타쿠들의  ‘근시’의  사랑을  그리워하는  것  자체로  이미  자기만의  사랑을  전달했다고 느꼈다.  때로는  우리가  무언가를  실행하지  못하더라도  그  실행을  위해  노력한  것만으로  칭찬을 받아 마땅하다. 지하 소극장 오타쿠들의 형태와 소리가 분명한 ‘근시’의 사랑은 아닐지라도, 마음 의 문이 반 쯤 닫힌 평범한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상이 불분명하게 맺히는 사랑도 사랑이니까. 그 래서 그 노력마저 소중하다.

  하쿠처럼 정체성으로 인해 상처를 입은 사람도 있지만 경제적인 문제로 상처를 받은 이들도 있 다. 어쩌면 자본주의 사회에 도처하는 다양한 아픔의 시발점은 대부분 ‘돈’이지 않을까. 「두 사람 의 인터내셔널」에서는 가난한 가정환경으로부터 상처를 입은 두 사람이 결국 서로를 통해 치유가 되며 행복을 일궈내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20세기에 머무는 구식 용어 같 지만—정말  그러길  바라지만—안타깝게  현재  사회에서도  그  형태만  변하여  일어나는  현상이다. 투표권이  있지만  어떤  쓸모가  있는지  알기  어렵다는  진주의  말에  마음이  아팠다.  이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에 치여 정치에 관심을 가질 틈도 없었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고, 투표권을 행사하 더라도  그  결과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이  미미할  것임을  알고  체념하는  말인  것  같기도  하다. 이 사회를 살아가는 많은 평범한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상황일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진주 와 니콜라이는 생을 포기하지 않는다. 나는 그래도 열심히 살아가야지, 나는 그래도 친절한 사람이 되어야지,  계속  다짐한다.  자신에게 못되게  굴었던  옛  친구가  걱정되어  먼저  연락을  하고,  맘에 들진 않았던 알바 동생 채널에 댓글을 단다. 그들은 답장을 결국 받지는 못 했지만 사랑을 베 푸는  시도를  했다는  것에  서로를  칭찬한다.  그들은  세상으로부터  사랑  대신  냉담함을  받으며  살 아왔지만, 오히려 세상에 사랑을 베풀었다. 그 사랑의 형태가 흔히 미디어에서 보이는 기부나 봉 사의  뚜렷한  모양을  가지진  않았지만,  이렇게  상이  불분명하지만  소소한  사랑이  모여  우리  사회 에 소외된 이웃이 줄어들고, 범죄가 줄어들어 더 살만한 세상으로 이어질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사랑은 인류의 가장 보편적인 가치로 꼽히는 만큼 다양한 모습을 지닌다. 전 재산을 기부해 배 움이 부족한 곳에 학교를 세우는 사람, 가난한 나라 아이들의 치료를 위해 평생을 바친 사람들과 같이 위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처럼 자신의 자리에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소소한  사랑을 베푸는  사람들도 있다.  다른  사람들처럼  ‘근시’의 강렬한  사 랑을 못 하여 좌절할 필요도 없고, 그것을 못하는 타인을 비난해서도 안된다. 어쩌면 우리가 하루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은 드물게 일어나는 그런 위대한 사랑이 아닌, 상처를 받은 사람들 끼리 포기하지 않고 손을 뻗는 그 사랑에서 비롯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평범한  것은  너무나  두루뭉술해서,  개개인의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고  공감을  이끌어내는데  실 패할 때가 있다. 하지만 동시에, 평범한 것은 너무나 보편적이어서, 나에게 던진 화살이 아니어도 내가 도리어 화살에 다가가 찔릴 때가 있다. 이 책은 나에게 후자였다. 이 책은 여느 소설처럼 비 범한  배경을  가진  주인공의  좌충우돌이  담긴  기승전결이  완벽한  소설은  아니다.  그저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는,  쓸데  없는  고민과  사소한  상처들에  생채기가  난,  그래서  더  이상  머리  아프고 싶지 않고 상처받기도 싫어 자신을 선팅해버린, 그런 소시민들의 이야기이다. 노골적으로 ‘힐링’이 라는 표제를 내세우고 있지 않지만 은은하게 치유가 되는 게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한 때 나의 안구건조증을 치료해줬던, 이 책을 읽으며 계속 떠오른 소중한 노래를 남기며 서평을 갈무리하고자 한다. 


브로콜리 너마저 「보편적인 노래」


보편적인 노래를 너에게 주고 싶어

이건 너무나 평범해서 더 뻔한 노래

어쩌다 우연히 이 노래를 듣는다 해도

서로 모른 채 지나치는 사람들처럼

보편적인 노래가 되어

보편적인 날들이 되어

보편적인 일들이 되어

함께한 시간도 장소도 마음도 기억나지 않는 보편적인 사랑의 노래

보편적인 이별의 노래에

문득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때 그때의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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