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마음은 딱딱하고 어떤 마음은 물러서
그리고 어떤 마음은 눅진하고 어떤 마음은 건조해서
김나현
딱딱한 마음은 무엇이고, 무른 마음은 무엇일까? 무엇에 대해 딱딱하고 무엇에 대해 무른것일까. 그리고 우리는 어느 정도를 ‘딱딱하다’라고 정의하고, 어느 정도를 ‘무르다’고 정의하는 것인가.
물성: 물질이 가지고 있는 성질. 물질의 전기적ㆍ자기적ㆍ광학적ㆍ역학적ㆍ열적 성질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마음을 물질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마음에도 물성이 있음이 분명하다. 물질의 단단함과 부드러움, 탄성과 강도처럼, 마음 또한 여러 성질들로 가득하다. 재미있는 점은 이러한 성질이 항상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물성을 나타내는 ‘수치’를 우리는 객관적이라고 하지만, 그 ‘수치’조차도 어떠한 물질을 기준으로 삼아 나타낼 뿐, 우리는 비교하지 않고는 표현할 수 없는 은유와 비유의 존재인 것이다. 딱딱하고 무른 것- 경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경도로서 흔히 접하는 모스 굳기계 또한 그 수치가 상대적이다. 모스 굳기계 기준 굳기가 1인 활석과 10인 금강석의 실제 굳기 차이는 10배가 아니다. 절대경도와 같이 기계를 이용해서 측정하는 수치도 있지만, 결국 경도를 계산하는 것에 사용되는 압력의 정도, 압력을 가한 후 남은 자국의 크기 등은 한 물질을 기준으로 삼은, 비교의 산물일 뿐이다.
(읽지 않아도 좋은 글:이 글을 쓰기 위해 위키피디아를 찾아보았다. 길이의 단위인 미터(m)는 빛이 진공에서 1/299792458초 동안 진행한 거리를 말하며 (미터의 기준은 계속 변화해왔다.) 1초는 세슘-133 원자에서 방출된 특정한 파장의 빛이 9,192,631,770번 진동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말한다. 우리가 흔히 압력에 쓰는 파스칼 단위 또한, 제곱미터 당 1N 만큼의 힘이 가해질 때, 1Pa라고 한다. 결국 여기에도 미터법이 쓰이게 되는 것이다. - 우리의 모든 것은 빛을 기준으로 흘러간다. 언제나 빛에 기대어 살아갈 뿐이다.)
결국 하고싶은 말은 우리는 모두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딱딱함과 부드러움은 그것들이 놓인 맥락과 비교 대상을 통해서만 비로소 의미를 얻는다. 그 기준은 글을 읽는 독자의 마음이 될 것이다. 이러한 상대성을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마음의 다양성을 더욱 깊이 받아들일 수 있게된다. 그리고 가득히 마주 닿은 마음을 통해 세상을 보게 된다. 나는 책을 읽으며 단순히 딱딱하고 무르다로 나눌 수 없는, 네 가지 마음을 마주하고 왔다.
첫 번째 마음
“그러나 갤리에서 들리는 작은 소리 때문에 선잠을 자느라 나는 현실과 꿈 어딘가에 걸쳐져 있었다.” - 문보영, 다 주고 가버리기
첫 번째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하는 한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꿈과 같은 마음이었다. 작가님의 문체도, 내용도. 마음이 꿈에 있었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독특한 내용 구성과 문체여서, 에세이가 아닌 판타지 소설을 읽는 듯 했다. 점성 있는 꿈들이 작가님을 거쳐 하나의 글자로서 책에 눅진히 달라붙어있었다. 그래서인지, 온통 흰 빛과 검은 색 사이에서 나는 무지개의 빛이 합쳐져서 흰 빛이되고, 무지개의 색이 합쳐서 검은 색이 되어 글이 되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두 번째 마음
“그래서 쓴다. 지금 나의 일과를. 쓰면서 돌이켜본다. 나의 일과를. 특별할 것 없는 노동의 시간이라 별로 쓸 것이 없다.” - 이소호, 프리한 3.3%
두 번째 마음은, 딱딱하고 축축한 마음이었다. 솔직하고, 현실적이고, 차가운 내용을 담고 있지만, 사실 너무 뜨겁고 축축한 마음이었다. 글에서 짠 맛이 느껴진다. 글을 읽는 내내, 나는 회사생활에 힘들어하는 친구를 위로해주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에 휩싸였다. 그래서 조금은 피로감이 드는지라, 몇 번을 쉬어가며 읽었던 것 같다.
세 번째 마음
“빛 좋은 개살구 알지? 개살구도 빛이 좋아야 사람을 끌어 제발 빛 좀 보며 살자 빛을 봐야 빛도 난다” - 오은, 오전 11시 47분의 시
세 번째 마음은, 따뜻하고, 물렁한 마음이 참 좋았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마주했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읽는다는 것은 어쩌면 작가님과 나의 마음의 방향성이 비슷하기에, 그 따뜻함을 곧은 방향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마음에 와닿는 문장과 표현이 많았다. 특히 빛과 삶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 마음에 꼭 들었다. 좋은 마음을, 좋은 친구를 알게 된 것 같아 기쁘다. 햇빛을, 햇볕을, 햇살을, 햇발을 닮은 마음이다. 따뜻하게 마음을 내리쬐는 글자들에 한없이 눈부셨다.
네 번째 마음
“모든 소설의 제목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될 수 있다는 문장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문학은 지난 시간을 돌이키며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고민하는 일이라는 뜻이기도 하고, 지금과 그때가 얼마나 다른지 생각해보는 일임을 가리키는 것이며, 그 무엇보다 결국 문학이 상실에 대해 말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뜻하는 말일 터이다.” - 황인찬, 자전거를 탈 줄 모르는 사람
마지막 마음은, 건조하면서도 담백한, 연약하고도 다정한 마음이었다.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고민들과 생각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작가님은 잃어버린 것들이라고 표현했지만, 나는 잃은 것보다는 놓친 것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상실이 아니라 아쉬움의 문제인 것이다. 문학은 그래서 잃어버린 시간이 아닌 놓쳐버린 시간을 찾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겪지 못한 시간과 공간을 문학을 통해 경험하는 것. 내가 놓친 세상을 좀 더 알아가고 더 가득히 느끼고 싶어서- 라고 해두고 싶다. 나는 작가님의 글을 통해 내가 알지 못했던, 놓쳐버린 세계를 마주할 수 있었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양한 마음을 경험한다. 때로는 부드럽고, 때로는 단단하며, 어떤 때에는 투명하거나 무거운 마음으로 살아간다. 성질을 정의하는 방식은 매우 다양하므로, 우리의 마음은 어쩌면 무어라고 정의할 수 없을 만큼 각기 다른 모양과 성질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현실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다양한 마음들을 마주하고, 또 닮아가기도 하고, 닳아가기도 한다. 내가 시나 수필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다양한 마음을 오롯이 그리고 온전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마음의 결은 그 다양성 안에서 더욱 빛난다. 그리고 모든 마음은 상대적으로 정의된다. 다양한 경도와 다양한 강도의 글들, 다양한 점성을 가지고 다양한 온도를 가진 글들을 보며 나는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정의할 수 있다. 그렇게 세계를 만나 마주 닿고, 그렇게 끌어안을 수 있게 되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