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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2학기 "독서후담" 당선작 -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 서평
  • 글쓴이 관리자
  • 작성일 2024-02-14 13:56:58
  • 조회수 684

다름을 고통으로 만드는 사회

 

정은혜



장애인은 사회적 관점에서 비장애인과 다르게인식된다. 사람은 언제나 자신과 타인 사이에서 공통점을 찾아 유대를 형성하고, 차이점을 근거로 상대를 배척하여 집단을 공고히 하니, 이와 같은 현상은 그리 놀라울 일은 아니다. 하지만 다름의 인식이 절대다수의 소수를 향한 핍박으로 이어진다면 결코 옹호할 수 없다. 그러나 장애가 그러했다. 옛날부터 장애는 욕으로 사용되었고, 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차별은 당연했다. 다행히도 20세기 말부터 급속도로 경제가 발전해 나감에 따라 사회적 인식도 발맞춰 성장했고, 그중에는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담론도 활발히 이어졌다. 그 결과, 오늘날에 이르러 장애인을 향한 원색적인 비난과 부정적인 시선은 줄었지만, 여전히 재고되지 못한 인식과 대상화는 끝내 남아 그들을 괴롭힌다.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의 저자 이길보라는 이러한 부분을 정확히 지적한다. 그는 농인 부모 아래 청인 자식으로 태어나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회라는 두 집단에 속해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 갔다. 그 속에서 마주 보는 두 사회가 절대 평등하지 않음을 깨닫고, 철저히 비장애인의 시각에서 쓰인 일방적인 장애의 역사를 비판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두 사회의 중간에 존재하는 코다라는 정체성을 가진 자기 경험에서 나아가 소수자의 삶이라는 확장된 개념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최근 장애인 인식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2021년부터 시작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시위이다. 시위의 목적은 이들이 가진 신체적 제한으로 인한 대중교통 이용의 불편을 개선하는 이동권 보장이 핵심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위를 두고 일부는 불법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며, 시민을 인질 삼아 사적 이익만을 취한다며 비난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시위의 목적 자체는 이해하지만, 출근 시간을 방해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비판한다. 이처럼 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호의를 베풀 동정의 대상일 뿐이므로, 감히 비장애인의 일상을 방해한다면 다시금 배척한다. 두 사회의 권력관계는 우위가 분명하다. 그리고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불리듯, 이 장애인들의 시위 역시 비장애인들에 의해 타자화되어 보도된다. 그렇다면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과연 그들의 역사가 비장애인의 손에서 온전히 대변될 수 있을까.

저자는 어린 시절 코다로서 겪었던 일들을 얘기한다. 세상은 때론 그의 가족에게 냉혹했고, 대다수는 친절을 가장하며 그가 농인 부모를 둔 자식으로서 응당 어려움을 겪길 바랐다. 안타까워할 준비를 마치고 불쌍한 존재를 바라보는 시선 속에서 그는 철저히 삶의 주체성을 빼앗겼다. 저자는 이러한 비장애 중심주의 사회에 반해 장애 중심의 역사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었다. 1부 나를 만든 세계에서는 장애가 어떻게 자신의 삶을 구성하는지 서술한다. 농인 여성으로서 운전대를 잡은 어머니를 보며, 타국에서 이방인으로서 고립된 연인의 우울증을 살피며, 장애와 질병은 사회적으로 구성되었을 뿐 건강한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또한 책에서 소개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Deaf U>에서는 농인을 위한 갤러뎃 대학의 일상을 담아낸다. 그곳은 소리가 없다는 것 외에는 비장애인 사회보다 더 선량한 사람만 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이기적인 사람만 모인 곳도 아님을 보여준다. 이는 장애인은 특별한 존재가 아니며, 동정이 아닌 배려가 필요한 것임을 시사한다. 장애를 어떻게 사유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정상의 기준을 환기하고 세상을 바꾼다.

우리 사회는 단지 장애만을 차별하지 않는다. 인간의 분리 욕망은 사회 전반에 깔려 계급과 계층을 나눈다. 이는 장애뿐만이 아니라, 미등록 아동, 이주여성, 외국인 노동자, 동성애자 등 수많은 소수자를 생산한다. 2부 나와 우리가 만나는 세계에서는 장애 사회를 넘어 다른 소수자들까지 아우른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말처럼 저자의 글은 주로 농인과 소수자의 삶에 집중한다. 작가의 역량 측면에서 한정된 주제만을 사용하는 것이 아쉬울 수 있지만, 당사자만이 가지는 시점에서 사회적 담론을 이끌어내는 것은 모방 불가능한 강점이다. 이러한 강점에 매우 공감하며, 사적인 이야기가 더 많아져야 사회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을 것이라 본다. 결국, 건강한 담론은 효율적인 이야기 전달 방식에 대한 소수자들의 고민과 그들의 목소리가 사적이라는 이유로 폄하되고, 소외되지 않도록 만들 사회 구성원의 노력으로 형성된다. 사회는 완벽히 똑같은 사람들이 아닌, 조금씩 다른 사람들이 모여 만든 집단일 뿐이다.

많은 사람이 고통에 공감한다고 착각하지만, 대다수는 동정한다. 그것을 절실히 느낀 것은 올해 초 친척이 뺑소니 사고로 돌아가셨을 때였다. 친척은 선천적으로 팔꿈치 아래가 없었고, 흔히 말하는 장애인이었다. 당연하게도 뉴스에는 장애인 가장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유가족의 입장에서는 언론에서 관심을 두는 것이 감사하지만, 그것이 피해자에게 장애가 있어 사람들의 동정 여론을 모으기 때문임을 모르지 않는다. 우스운 일이다. 가족과 친구에게는 그저 착한 동생이자 삼촌이었고, 재밌는 친구였을 뿐 장애인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데 말이다. 이 책을 읽은 것도 제목을 보고 공감이 가당치 않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때문이었다. 비록 저자와 같이 직계 가족은 아니었지만, 가까이에서 보고 자라며 내 세계에 영향을 준 친척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더욱 대단하다. 그는 말에서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준다. 농인을 주제로 하는 <반짝이는 박수 소리>, 여성들의 연대를 말하는 <당신을 이어 말한다>, 베트남전 참전 군인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기억의 전쟁>,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을 대변하는 새로운 저서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까지. 비장애인들의 호의에 감사하며 살아가야 하는 보호자가 아닌, 끊임없이 소리를 내며 사회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이길보라라는 주체적인 한 사람으로서 살아가고 있다. 비단 장애인뿐만 아니라 소수자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부족하고, 담론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져 나가야 한다. 이 책이 그러한 담론의 시작이 되어, 어떻게 해야 타인을 진실하게 공감하는지 배우고, 그들의 다름이 고통이 되지 않길 바라게 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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